1. 그러니까 말하자면 나에게 있어 '사랑'의 주파수란 대충 이런 거다:
우리 사이에 + 당신의 꽃 http://youtu.be/CyE2SCPdcf4
(앗 '내빠강' 생각나는 가사ㅠㅠㅋ)
이 노래를, 곽진언의 목소리를 들을 때의 집중도, 긴장감, 가슴의 떨림, desire, 약간은 서글프고 또한 희망으로 가득찬 그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 몽롱하여 꿈인 것만 같은데 가장 alive한 듯한 기분과 heighten 되는 오감...
나에게 있어 romantic love란 대충 그런 모양이다.
사랑에 빠진 나는 아마도 대강 그런 모습이리라 생각한다.
That's what I imagine I will look like if and when I fall in love.
2. 스물아홉 살에 처음으로 연애를 하고 있는데, 여자친구도 동갑이고 그 역시 첫 연애라서 서로 마음은 급하고 조심스럽기도 하고 둘 다 연애경험이 전무하니 서툴기만 해서 자주 다툰다, 고 얘기했던 선배가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들을 당시 난 아마 스물 두 살이라 스물 세 살 정도 됐을 거다. 그리고 그때 난 '와 첫 연애를 정말 늦게 하시는구나'라고 생각했었다. 지금 내 나이 스물아홉, 12월 중순을 향해 가고 있다. 한달이 채 안되는 시간이 지나면, 나는 서른살이 된다. 그리고 나는 아직까지 연애 경험이 없다. 2010년에 하비람에 가서 화 물음의 주제도 '아직까지 연애 경험이 없다는 것이 화가 날 일입니까?' 였는데. 그리고 그 학기 내로 소개팅을 받겠다는 둥 '연애를 하기 위해 노력을 하겠다'는 식의 호언장담을 하긴 했는데 하면서도 I had my reservations and doubts... 그것이 화가 날 일이 아니라는 것 쯤은 알게 되었지만, 아니, 알게 되었나? 아무튼 나는 그때 그 선배보다 더 나이가 많아 졌고, 여전히 연애경험은 없다. 이 상황을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2010년에 스승님 말씀하시길 "연애를 하려면 좀더 섹시하게 해야 되." (그때 나는 나름대로 '여성스럽게' 하고 다닌답시고 머리를 가슴까지 기르고 앞머리도 내고 웨이브파마도 하고 손톱도 길러서 라벤더색 매니큐어도 칠하고 있었다. 도대체 뭘 더 섹시하게 하란 말인가...)
그 후에 여러 사람에게서 여러 버젼으로 들었던 이야기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기왕이면 예쁜 게 좋은거야."
심지어 "생명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면 예쁘게 하고 다녀야 되."라는 말도 들었고
서른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자 크리스마스 케익 이론을 비롯하여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너는 더이상 갑이 아니야! 을이라고! 사태 파악을 좀 해!"라는 말들과
그보다는 sympathetic하지만 결국 비슷한 뉘앙스인 "이제는 네 쪽에서 기다리거나 시간을 질질 끌 필요가 없는 거야. 네가 마음에 들면 먼저 대쉬하고, 기던 아니던 빨리 결론을 내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게 이득이야. 네 나이면 이제는 '시간'이 제일 희소한 자원이라고."
가장 최근에 나를 좋아했던 남자가 있었던 때는 2011년 여름 (2012년 여름에도 그 아이를 만났지만 그때는 이미 그 아이조차 나를 만나는 의도가 불분명해진 이후였다). 그때 그 애는 뭔가 나를 찔러 보기는 했던 것 같은데 나는 항상 '뭐야?' 라고 생각했다. 분명히 나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막상 같이 있으면 나를 희롱-_-하기만 하는 것 같은 태도가 나는 싫었다. 그래서 그 아이와 주고받은 걸 "썸 탔다"고 하기에도 어설픈 것 같다.
그 전에는 2010년인가 2008년인가에 내가 진심으로 경멸하던 (첫인상부터 we really started off on the wrong foot) 뚱뚱하고 4차원인 외국인 남자가 있었고. 정말 우스운 것은, "걔가 너 되게 많이 좋아했대, 되게 오랫동안~"이라는 얘기를 해준 사람이 술먹고 그남자랑 잔 내 친구였다는 거다. 그친구 참. 얼굴도 두껍지. 아니면 나를 너무 믿는건가... 내가 그렇게까지 un-judgmental하다고 믿는 건가?....
고등학교 때는 내가 생각해도 난 정말 토나올 정도로 뚱뚱하고 못생겼었으니 (거울 보기가 괴로웠다. 매년 찍어서 제출해야 하는 반명함판 증명사진은 모조리 찢어서 버려버리고 싶었다. 고1때 올빽&포니테일을 하고 찍은 사진을 보고 한 친구가 "황비홍"이라고 놀렸다.)그런 나를 좋아하는 애가 있었다면 걔는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을거고. (그런 내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에스프리 코트 입고 캘빈클라인 가방 메고 강남역에 열라 힙한 까페에서 만나자고 달려들었으니... 그걸 당한 그 남자애도 참 싫었겠다.)
중학교 때 가장 연애와 근접한 그 무언가를 해 보았는데 (요즘말로 "썸을 탔다"고나 할까...) 그때는 나도 열다섯 살 밖에 안됐었고 남친여친 하는건 되바라지고 공부못하고 불량한 애들이나 하는 건 줄 알았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순수하고 누구보다도 직설적으로 "난 너 좋아하는데... 넌 어때? 나 설마 차이는 거 아니겠지?^^" 라고 했던 그 아이에게 퇴짜를 놓고... 그 이후로도 데이트 비스무리한 걸 두어 번 했지만 그 와중에 그녀석은 이미 첫 여친, 첫키스까지 간 이후였다.
내 편을 들어준답시고 어떤 친구는 "분명히 대학때든 언제든 너를 좋아했는데 고백 안/못하고 넘어간 남자들이 있을 거야"라고 말해줬지만, I'm very skeptical. 설마 그랬겠어. 아마 없었을 거다.
'네가 하고 다니는 건 톰보이같이 하고 다녀도 속은 천상 여자인거 알겠어'라고 말했던 그 사람은 정말 귀신인가. 도대체 나의 어떤 부분을 보고 나에게 손톱의 때만큼 남아있는, 발현되지 않은 여성성을 알아본 거지. X-ray vision이라도 있나.....
이번에는 기필코 살을 빼겠다고 내가 그렇게 경멸하던 허벌라이프 다이어트 쉐이크를 샀는데, 작심삼일도 아니고 이틀만에 무너졌다. 분명히 배가 고픈 건 아닌데, 평상시에는 무언가를 먹으며 tv를 보던 시간을 달리 뭘로 채워야 할지 난감해서였다. (내가 하루 중에 무언가를 입에 넣으며 tv를 보는 시간이 얼마나 많았는지 깨닫게 되었다.) 정말로 당근, 오이, 방울토마토, 과일... 이런 것들을 냉장고에 항시대기 시켜 놔야 하는건가? 쉐이크를 단숨에 마셔 버리지 말고 오랫동안 음미하며 꼭꼭 씹어 먹어야 하는 건가 (그렇게 해서라도 식사 시간을 늘려?)? 아니면 전에는 무언가를 먹으며 보내던 시간을 이제는 공부를 하며 보내야 하는 건가? 아니면 저녁 굶기? 5pm 이후 금식? 주말 금식? 운동을 이것저것 하고는 있는데, 유산소를 워낙 싫어해서 요가와 필라테스 위주로 하다 보니 체중감량에는 별 도움이 안되는 것 같다. 역시 더 뛰고 덜 먹어야 하는데... 아무튼 확실한 건 저녁식사는 반드시 7시 이전에 끝내고, 저녁식사 이후에는 절대 네버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로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그리고 반드시 오전에 일어나서 쉐이크로 아침식사를 하는 버릇을 들여야.......하는데.....
사회생활 하려면, 그리고 고딩이냐 학부생이냐 이런 소리 안 듣고 for people to take me seriously, 화장을 하고 다녀야겠다 싶어서 기본적인 화장품은 항상 구비해 놓긴 한다. 하지만 화장이란게 자꾸 (=매일, or close to 매일) 하고 다녀야 기술도 늘고 자기에게 어울리고 자기 마음에 드는 화장 스타일도 알게 되는건데, 평상시에 화장을 안 하고 다니다가 갑자기 화장을 하고 나타나면 받게 될 질문들과 지적들이 싫고, 또 무엇보다 내 자신이 너무 어색해서, 점점 더 화장을 안 하고 다니게 된다. 그래서 구비해 놓은 화장품들은 결국 너무 오래되서 버리고, 또 새로 구비하고, 또 버리고,..... 2005년부터 지금껏 계속 그러고 있다. 화장한 내 모습을 나 자신과 주변 사람들이 어색해 하다가 결국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과정은, 고딩때, 아니면 늦어도 학부생때 겪었어야 하는 건데. 연애도 그렇고.....
운동을 해서 살을 빼고 몸매를 가꾸는 건 전혀 부끄럽다는 생각이 안 드는데,
남의 눈에 들기 위해 화장을 하고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입어야 한다, 고 생각하면 너무나 자존심이 상해서 화가 날 지경이다. 그런 것들은 겪지 않고 넘어가도 된다면 과감히 스킵해 버리고 싶은 일들이다.
연애는 스킵하고 싶지는 않다. 평생 혼자 살기는 싫다. 40, 50대까지 '화려한 싱글'로 살 자신도 없거니와 노처녀 히스테리로 나 자신과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며 살고 싶지 않다. 그리고 사람의 인생에서 임신 출산 육아는 꼭 경험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일들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경험해야만 한다는 의무감이 든다). 그리고 설사 선을 보던가 듀오로 만나던가 하다못해 online dating으로 사람을 만나더라도 연애기간이 몇개월은 있어야 될 것 아닌가. 누군가를 가슴 시리게 좋아해 보고 누군가를 깊이 알게 되고 내가 그 누구와도 거기까지는 가본 적이 없는 수준의 intimacy를 쌓아가는 과정을, 경험해 보고 싶다. 누군가가 나를 예뻐해 주는 것도 정말 경험해 보고 싶다. 사랑받는다는 것, 여자로서 남자에게 사랑받는다는 것은..... 도대체 어떤 걸까. 참 궁금하다.
'사랑받을만한 구석이 단 한개도 없으면서, 사랑할 줄도 모르면서, 사랑받고 싶어 몸부림을 치고 있다'는, 어디서 주워들을 표현이, 지금 나의 상태를 꽤 적절하게 묘사한다는 생각이 든다.
3. 내가 말해 놓고서도 꽤 명언이라 생각되는 말이 있어 적어 본다.
요새 여기저기서 외롭다는 얘기를 하는 사람이 하도 많아서,
외로움 그딴 것 쯤이야 나의 오랜 벗이고 second nature이므로 감히 한말씀 드리자면...
"살면서 그런 시간들, 그런 상황들이 있는 거 같아요. 극복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고, 그냥 '겪어 내야만 하는' 그런 시간들...."
4. 고1때, 나는 학교가 싫었다. 외고 입시에 실패한 것도 쪽팔리고 화가 나 죽겠는데, 뺑뺑이 1세대의 치욕을 호되게 맛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깡패 학교로 소문난, 우리 city의 17개 고교 중 15위 정도의 학업성취도를 보이고 있는, 남자애들은 패싸움하거나 오토바이 훔쳐 다다가 죽고 여자애들은 임신해서 학교를 그만 두는, 나는 먼 나라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환경이 나의 immediate reality가 되는 실로 쇼킹한 경험을 했다. 내가 그 현실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그 환경의 그 어느것과도 familiarize하기가 싫었다. 그 환경의 일부인 아이들과 친해지기 싫었다. 말을 섞기도 싫었고, 부러움의 눈길도 경멸의 눈길도 단순한 호기심도 심지의 선의로 내미는 손길도 온몸으로 거부했었다. 제발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말아 달라는 생각으로 바짝 긴장해서 쉬는 시간에는 항상 문제집을 풀었다. 집에서 간식/아침식사 대용으로 쵸코파이 같은 것을 챙겨간 적이 몇 번 있었는데, 누구와 나눠먹는 것도 싫었고 그것을 먹고있는 모습을 남에게 보이기 싫어서 화장실 칸 안으로 들어가서 몰래 먹었다. 나의 외로움과 현실 부정을 똘똘 뭉쳐 공부에 쏟아 부었다. 결과는..... 고등학교 첫 중간고사에서 전교 1등을 했다. 10과목인가 12과목 시험을 쳤을텐데 평균점수가 98점 정도 됐을 거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전교1등이었다.
지금 나는, 아이비리그 대학의 로스쿨을 어찌어찌 졸업하기는 했으나, 3년 내내 전교 꼴등이었고, MPRE에 두 번 낙방했으며, 변호사시험에도 낙방했고, (당연히) 취업에도 (아직까지는) 실패했다. (지금 내가 처해 있는 상황과 비교해 보면) 외고에 못 가서 일반고에 간 것은 그렇게 나쁘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때 나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더 심하게, 나 자신에게 실망하고 화가 났던 것 같다. 중학교때까지 나는 성공에 익숙해 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등학교때부터 나는 실패에 익숙해 졌다. 전교 1등이라는 슬픈 쾌거를 이룬 후, 모든 선생님들과 공부에 관심이 눈꼽만큼이라도 있는 학생들은 나를 다르게 대했다. 아이들은 나를 괴물로 보거나, 친구(라기 보다는 과외/학원 버디) 삼으려고 하거나 둘 중 하나였고, 선생님들은 나를 갑자기 특별대우 하거나 나를 콧대높은 prick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6월에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있었다. 7월 초에 기말고사를 치렀다. 모든 과목에서 점수가 떨어졌고, 특히 수학에서는 60점대 점수를 받았다. (답안지를 제출하는 순간 울었던 기억이 난다. 채점하기 전에 이미 난 알고 있었던거다. 문제를 다 풀지도 못했으니까.) 내 생애 처음 받아 보는 60점대 시험점수였다. 수학 A반에서 C반으로 강등되었다. 훗날 재수해서 서울대학교 행정학과에 진학하고 지금은 아마 행정고시에 합격해서 5급공무원이 되었을, 그 당시 나의 짝꿍은 (and he was helplessly in love with and dating a 'dumb blonde' type girl in our class) 나에게 도대체 어쩌다가 그렇게 되었냐고, '월드컵 때문이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고3 5월까지도 SKY 사회계열, in-Seoul 법학과 혹은 사회계열을 목표로 수능 준비에 전념했다. 모의고사를 볼 때 마다 인서울 사회계열 갈 수 있는 성적이 나왔지만, SKY는 택도 없어 보였다. 서울대나 연대에 가기 위해 (고대는 관심이 없었다. 부모님 두 분 다 신촌 출신이라 수년 간 고대는 뭔가 second-rate라는 세뇌르 받아온지라...) 재수를 해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했다. 1학기 수시모집에서 고대, 연대 모두 떨어지고 (초, 중학교 내내 베프였던 친구는 이때 연대 사회계열에 합격했다. 이 역시 나의 ego에 엄청난 타격을 주었다.) Plan B 격으로 자존심 구겨 가며 지원한 E대 국제학부만 합격했다. 새벽 2시까지 학원을 다니며 오르지 않는 수학 모의고사 점수에 날로날로 자기혐오가 늘어가던 생활을, 하루아침에 '대학 합격자'라는 명분으로 내던져 버렸다. 내 생에 최고의 여름이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벌고, 문방구가 아닌 백화점에서 부모님과 동생, 할머니께 드릴 선물을 샀다. 내가 번 돈으로 영화도 보고 커피숍도 다니고 친구들과 파스타도 사먹었다. 일주일에 두어 번 대학교에 수업을 들으러 다녔고 덕분에 더이상 다닐 이유가 없던 학교도 오전수업만 하고 벗어날 수 있었다.
구리디 구린 고등학교를 다녔으므로, 고등학교까지는 영어와 public speaking이 내 강점이었는데, 인생의 대부분을 영어권 국가에서 보낸 애들과 함께 대학을 다니려니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다행히 대학교 1,2학년때는 공부보다는 미팅과 술모임에 에너지를 더 많이 쏟는 친구들이 많아서, 성적은 괜찮게 나왔고, (새발의 피만큼 주던) 성적우수장학금도 거의 매 학기마다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debate를 하고 영어를 공용어 혹은 모국어로 쓰는 다른 나라 대학생들과 섞이다 보니, 또다시 나는 참으로 작은 존재임을 바로 깨달았다. 동아리에서 대회를 나가기 위해 팀을 짤 때면 나는 항상 D, E팀이었고, 3학년이 되자 1학년들과 함께 팀을 하게 되었다. 4학년때까지 동아리에 붙어있던 동기는 딱 한명 있었다. 그친구마저도 동아리 활동은 거의 안하고 행정업무만 처리하는 동아리 회장이었다. 부끄러울 때 까지 (그 당시에는) 좁디좁은 한국 영어토론 바닥에 붙어 있었더니 4학년이 되어서야 Best Speaker상을 하나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내 토론 커리어에 '대회 우승'은 단 한번도 없었다. 아, 아리랑tv에서 했던 토론 '대회'에서 '시즌 1위'를 하긴 했지만, 그 '대회'는 대회의 모양조차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그다지 쳐 주지 않는다 (나 자신도).
로스쿨에 오기 전에 나는 '루저가 되기 위해 간다'고 말을 하고 다녔었다. 내가 대학 때 처럼 ABAB한 성적을 받지 못하리란 예상은 했지만, 교수님께 불려가서 "페이퍼에 표절 하지 마라. 그거 범죄다. 너 왜 그따위로 하냐. 여기 있고 싶기는 하냐? 누가 억지로 너 로스쿨 보냈냐?"는 얘기를 듣고, 학사경고를 받고 (물론 기록에는 남지 않는다), 면접에서 성적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 마다 모멸감을 느끼고, 머리끝까지 화가 난 교수님께 C-라는 내 생에 처음 구경해 보는 성적을 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난 이미 이 downward spiral에 익숙해져 있었다.
부모님도 그랬다. 미국에서 취직을 하기 위해 좀더 노력해 볼 시간을 달라고 매달렸더니 "제발 꿈 깨라. 허상 속에서 사는 미친놈은 되지 마라. 그렇게 질질 끈다고 뭐가 될 것 같으냐, 도대체 네가 미국에 있어야 하는 이유가 뭔지 이해 못 하겠다"고 하셨고, 바익잼에 낙방했다는 소식을 전해 드리며 면목 없어 하자 "예상했던 결과네. 이제 어쩔 거야?"라고 소름돋을 정도로 침착하게 대꾸하셨다.
더이상은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무언가를 achieve 해야만 하는 건 없어진 셈이다. 하지만 나에게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으시고, 내가 실패할 것을 당연시 하시는 것은 그것 나름대로 또 서글프다.
이런 나에게서 도대체 무슨 희망을, 잠재력을, 매력을 볼 수 있을까.
지금까지 나를 친구로 여겨 주고 나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주는 모든 분들께 고개숙여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의아하다. 도대체 무슨 이유를 나를 곁에 두고 싶을까. 무엇 때문에 나와 관계를 유지하고 싶을까. If I were them I would not want to continue having a relationship with me.
아무튼, 취업하기 위해서는 없는 매력을 지어 내기라도 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같은 상황에서는 '영적 바바리맨'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이 길고 긴 얘기를 왜 시작했냐면,
'고1 첫 중간고사 준비했을 때 처럼 쉬는시간까지 아껴 가면서 공부해야 바익잼에 합격할 수 있을 거다'라는 결론을 말하기 위해서였다. 쓰다보니 흥분해서 매우 길어졌는데 원래 할 얘기는 그거였다. 곧 페북도 다시 디액하고 카톡 알림도 꺼버리고 공부에 전념해야 하겠다.
마침 뉴욕에 친구도 가족도 없으니 나를 귀찮게 하는 존재라고는 나 자신밖에 없다. 고1때처럼 공부하기에 딱 좋은 환경이다. 친구하고 싶은 사람도, 친구 하자는 사람도 없으니.... 파트타임 일과 봉사활동이 마음에 좀 걸리지만 파트타임 일이야 이미 하는 시늉도 안하는 수준이고 (그러면서 돈은 꼬박꼬박 받는다... 나 양심에 털 많이 났음), 봉사활동이야 좀 미안하긴 해도 언제든지 내가 안/못 나가겠다고 얘기하면 된다. 아무튼 결론은, 닥열공. 용이 졸업식/크리스마스때 이타카 또 가고 싶은데... 그것도 다시 좀 생각해 봐야겠다. 졸업식만 보고 오던가, 정말로 공부할 거 다 챙겨 가서 엄청 빡세게 공부하던가... 아 근데 거기 가서 적응하면 뉴욕 돌아와서 또 적응해야 하니까 1박이나 2박으로 졸업식만 보고 오는 편이 좋겠다. 아예 가지를 말던가....
닥열공!!!!
너는 고시생이다!!!! 네 분수를 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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